피아노가 있던 방 - 유희열
그 방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그 방은 영화 '겨울 나그네'에서처럼 하얀색 이층집에 창살이 예쁜 베란다가 있는 낭만적인 장소가 아니었다.
피아노 한 대가 들어가면 꽉차는, 낡고 허름한 아파트였다.
마침내 학교에서는 서울대 작곡과에 도전하라는 허락이 떨어졌고, 우리 집은 경사 났네 하는 분위기였다. 합격잔치를 미리 치르는 기분으로 어머니께서 피아노를 사 주셨다. 하지만 피아노는 우리 집에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 식구가 잠을 자던 어머니의 가게 뒷방에 들어가기에는 놈의 덩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결국 피아노를 위한 방을 따로 얻어야 했고, 피아노는 나와 함께 그 방으로 내쫓긴 셈이다.
나는 고3 시절을 피아노가 있는 그 방에서 혼자 보내야 했다.
피아노가 없어서 종이피아노로 연습할 때에도, 피아노와 함께 집을 나왔을 때에도, 어린이 피아노 학원에서 코흘리개들과 함께 레슨을 받을 때에도 나는 무섭게 집중했다.
누구보다 절실했다. 만약 떨어지면 나이트 밴드에 취직해 돈을 벌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로동, 화양리, 개포동, 그리고 집이 있는 효자동까지 레슨을 받으러 매일 다녀야하는 그길이
비쩍 말라 가는 내게는 지구 반 바퀴만큼이나 멀었다. 버스안에서는 항상 졸았다. 박카스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는 중에 딱 두번 땡땡이 쳤는데 그때 봤던 영화가 '가을날의 동화'와 '겨울 나그네' 였다.
혼자 봤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되도록 엉엉 울었다.
나는 두 편의 슬픈 영화를 보는 동안 피아노가 있는 방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내 눈물에 익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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