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슈크림2 [410209] · MS 2012 · 쪽지

2012-12-29 22:18:25
조회수 2,567

이한열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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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 인파가 광화문 시청 인근부터 서대문, 신촌까지 가득 찼었을꺼에요

이한열(1966년 8월 29일 ~ 1987년 7월 5일, 전남 화순 출생)은 대한민국의 학생이였습니다. 시위도중에 최루탄 맞고 사망하여 6월 항쟁의 도환선이 된 인물이기도 하구요

화순군에서 태어나고, 광주진흥고 졸업하고, 1년 종로학원에서 재수하고, 1986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동아리 '만화사랑'에서 꾸준히 활동했구요..

1987년 6월 9일, 다음날 열릴 예정인 '곰누살인 은페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 앞두고 연대에서 열린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후의 시위과정에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한 달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날 22살의 나이에 사망했어요. 

사망 이후 87년 7월 9일 '민주국민장' 이라는 이름으로 장례식이 진행되었고, 연대 본관 -> 신촌로터리 -> 서울시청앞 -> 광주 5.18 묘역의 순서로 이동되고 진했되었고, 당시 추모 인파가 서울 100만명, 광주 50만명 등 전국적으로 총 160~170만명 사이였다고 합니다. 

이한열 열사의 죽음과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관이 도화선이 되어 전두환 정권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는 불타올랐고, 6월 항쟁이 격해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이한열씨 누나에요 ㅠ  슬픋자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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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칠기삼73 · 377432 · 12/12/29 22:19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열사시죠... 멋진 지식인이셨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요...

  • Adolf Hitler · 59684 · 12/12/29 22:21 · MS 2004

    참 몇몇 연훌 볼때마다 답답~합니다.

    이한열 열사가 자랑스러운게 아닌 작년에 고시붙은 몇십명이 더 자랑스럽겠죠 그들에겐.

    이러한 희생이 없었다면, 우린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까요.

  • 하향지원하지마라 · 410028 · 12/12/29 22:22

    화순군 출생이라 그런지 광주에서 추모 인파가 많았군요..

  • 밀키코코 · 341268 · 12/12/29 23:11 · MS 2010

    5.18이 일어난지 7년밖에 안되었을 때니 추모열기가 대단해서 금남로가 며칠 동안 장례식장이었대요.
    5.18때 처럼 대규모 시위로 번질까봐 경찰에서 운구차량이 광주로 진입하는 다리를 막았는데
    이한열 열사 모교의 교사들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이 돌다리를 놔서 광주로 들어왔다는..

  • 문과형이과생 · 401338 · 12/12/29 22:32 · M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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