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빛과소금 [332578] · 쪽지

2011-02-22 03: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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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과 착각 속에서 저를 구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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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다녀와서 철들었나 싶었는데...
사람의 천성이란게 있다고 믿지않지만
성격은 참 고치기 어려운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 26살 되는 장수생입니다.
나이만 먹었지 철이 덜 들었어요...

군대는 다녀왔고... 고3때 원서 3패에 20살 재수...
삼수하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차마 말 못하고
들어간 대학 2년동안 나태함에 빠져서 걍 반수도 하는둥 마는둥
월드컵도 즐기고 열심히도 아닌 그저그런 대학생활 다 지내면서
21~22살을 보내고
23살에 뒤늦게 입대했습니다.

친구들보다 뒤늦게 입대도 했고 뭐 진로에 대한 확신도 없고
그저 그런 생활에 우울할 줄 알았지만... 군대가서 나름 힘든 생활도
해보고 전역할 때 쯤에 자신감에 차서 전역했습니다.

살도 빠지고 운동도 하고 고등학교 때 88kg였던 제가(키는 181정도...)

몸무게가 70대 초반에 살도 빠지니까 친구들이 사람이 바뀌었다고

여자소개시켜준다 이래도 전 수능을 보려고 25살 작년 1년을 수능에 투자했죠...

사실 군에서도 공부는 했습니다.상병말 ~ 병장까지 군에서 수능공부를 했습니다.

근무 특성상 매복근무는 밤 8시에 나가면 새벽3~4시 계절마다 철수 시간이

다르지만 겨울엔 전투화가 얼고 양말 2~3겹씩 신어도 발가락이 얼고 손도 얼고

수족냉증을 앓는 저로선 지옥과도 같았죠... 군번도 꼬여서 감히 근무지에서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죠. 계급이 올라서 상병말 병장부터 계급대우 좀 받았죠.

매복근무는 끝 주간이나 밤~새벽 2시간씩 교대로 서는 탄약고 근무만 섰습니다.

물론 병장중반지나고 나서^ㅡ^

조장(또는 사수)로 나가면서 후임들데리고

후레쉬불 하나로 공부했을 정도로 열악하지만 수능을 나름 준비했습니다.

그것때문에 간부 순찰 돌 때 후임이 졸다가 그것을 놓쳐서 책바닥에 던지고 수하해서

하마터면 영창 갈 뻔 했던 에피소드도 있네요. 나름 노력했지만... 역시 군에서 공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었습니다.(행정병이나 cp병도 아니고 전투병으로서 ;;;)

군 전역후 부모님께 수능을 다시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저를 잘 안 믿으십니다. 제가 워낙 철이 없고... 믿음을 못 드려서 그런건
인정합니다. 중고등학교 사춘기때부터 말썽도 있었지만... 그 땐 제 잘못보다는
왜 사람을 못 믿을까 라는 생각을 먼저하고 제가 저지른 잘못이나 공부를 안한다는건 생각안했으니까요.)

당연히 부모님은 안된다고 하시죠...

<
스케이트,수영(2~3년) 미술(1년이상) 피아노(6년) 컴퓨터 등등 온갖 교육은 다 받았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소위 말하는 고액과외 50~70만원짜리도 몇 달씩 하고 30~40만원 수준의 과외는

그냥 학원다니듯이 다녔지만... 복습과 예습은 잘 하지 않았죠;;; 공부는 내신공부가 전부였으니

그나마 비평준화 좋은 학교도 아니고 5개 일반고교중에서 딱 3번째인 학교... 전교 14등으로 입학해서

그나마 내신으론 20위권했네요. 모의고사는 전교1등도 뭐 안습수준이었죠.

어떻게보면 소위 말하는 내신거품 학교에 하나였을지도... 지역명문고도 아니고 중간에서 잘한건 잘한게 아니죠

전 이렇게 착각하고 자만하면서 살아왔던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선 자식 잘되라고 당신들이 못 받은 좋은 교육 다 받아보라고 그러셨을텐데...

(참고로 저희 부모님은 두 분다 은행원이셨고 어머니는 IMF때 아버지는 3개월전에 명예퇴직 하셨어요.
두 분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나은형편에서 자라신 어머니는 아버지가 참 불쌍한 사람이라고 하세요.
할아버지가 아버지 7살에 군복무 중 돌아가시고 3남매의 장남으로서 힘들게 공부하셨거든요.
초졸인 고모 2분과 할머니의 벌이로 그나마 먹고 살았고 그 흔한 참고서 한 권도 없이
친구한테 빌려보고 연필,연습장도 넉넉하게 써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셨죠.
가난은 사람을 철들게하는지 아버지는 그 와중에서도 중학교 때 부터 지역에서 손꼽히는 성적으로
시골중학교 전교 1~3등정도만 뽑는 특차로 뽑혀서
대구 계성고(당시 명문고였다고 하네요)합격했지만 돈이 없어서 시골을 떠날수가 없었다고 해요.
첫번째로 가난에 의해 앞길을 막히셨다고 해요. 그래도 지역 명문고에 가셔서 전교 560명 사이에서
항상 1~3등을 하시던 성적표는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학력고사 성적으로는 서울대는 불확실하지만
연고대 부산경북대 합격할 성적을 받고도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입학을 포기하셨어요.
가난에 의해 2번째로 앞길이 막히셨죠. 그렇게 대학을 못 가시고 육방(육개월 방위라고 하죠)을
근무하시면서 학력고사를 또 쳤는데... 명문대는 역시 또 4년 장학생은 못되고 지역국립대
4년 장학생에 수석입학을 하셔서 겨우 대학에 갔다고... 현역때보다 성적이 떨어져도
부산대 갈 성적정도는 되었지만 부산에 친척도 없어 생활비도 없고 장학금도 안되서... 그 가난이란게 무엇인지;;;)

뭐 아버지 스토리가 길었네요. 아버지는 수석입학에 학생회장하시고 졸업도 수석졸업으로
당시 수석특채?? KOTRA(현 코트라)에서 근무하시다가 금융권(은행)으로 스카웃되서
은행다니시면서 은행지원으로 서강대 경영대학원 수료하시고 28년 근무를 끝으로 작년 11월에 퇴직하셨죠.

지금도 전 아버지께 공부 잘 한다. 열심히 한다. 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뭐 사실 아버지가 한 노력에 비해보면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노력을 당최 안하니 재수도 못하시게 하는거 울면서 빌어 했죠... 20살에 철이 없어서

초심은 온데간데 기숙학원에서 여자친구 사귀기 바쁘고 맨날 룸메들과 밤새 떠들고...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군대가서 조금 나아졌겠지 싶은 부모님은 저를 또 믿어주셨습니다.

저 역시 마음속에선 또 한번 믿어주신 부모님 생각...

군에서 후레쉬불 하나에 의존해서 어둠,추위속에서 한글자라도 더 확실하게 보려고 했던 기억

그 때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전역 후 친구들과 술도 먹고싶고 여행도 가고싶고 여자친구도 만들고 싶고...

가족 친척들 얼굴도 얼마 못 보고

2월 중순에 서울로 학원을 알아보러 갔습니다. 기숙학원은 제가 다닐 떄 월 130정도였는데

요즘은 200만원 넘는곳이 많더라구요. 제가 뼈저리게 후회하다보니 이게 정답이 아니라도

전 이런 생각을 합니다. "무조건 비싼게 좋은 것은 아니다"

사실 지금도 명문대생들 주2회 과외비보면 40~50만원하는데 제가 공부를 제대로 안하던

고등학교 시절 과외를 받다보니 그 효과도 솔직히 제대로 모르겠고

일단은 자신이 공부하려는 의지의 유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더 이상 그 정도로 부모님께 지원을 받기도 그랬었죠.

이번엔 뭔가 달라져야겠다하면서 난생처음 노량진으로 갔습니다.

부모님께 또 신세를 지는것이 싫었지만 제가 성공하는 것이 부모님께 최고의

효도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과 출신으로 현역(수리가형 5등급 언외 3~4등급 과탐 1~2등급)
재수 수리가형 4등급 언외 3~4등급 과탐 2~3등급
반수 수리나형 3등급 언외 3~4등급 과탐 2~3등급

말년에 휴가나와서 쳤지만 너무 망쳐서 성적표를 안 받았습니다.

제 적성검사를 보면 이과보단 문과계통으로 나오거든요. 과학에도 소질이 있다고 나오는데...

그래서 현역 때 수학은 몰라도 화생지1은 1등급을 많이 받았던것 같은데 수2는 솔직히 말하면

현역 재수 때 공부를 해도 개념도 제대로 못 때고 수능을 친거 같아서 많이 아쉽네요.

전 문과로 전과하기로 결심했죠. 이미 반수 때 부터 수리가형은 안되겠다 싶어서

문과에 과탐응시 교차로 성균관대 지원을 노렸던 전력이 있는데 이번엔 아예 문과로

가보자 했죠. 지역문화,지도, 지구본 세계지도 보기를 좋아하고 지구과학과 가장 연관

많은 사탐은 3지리 였어요.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맘에 국사...

학원에서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은 서울대 출신으로 수학을 가르치시고 제가 군대갔다와서

철 좀 들었겠구나 싶어서 동생들과 잘 지내고 모범을 보여달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목표 대학은 서성한 경영계열이라고 말하고 부모님처럼 금융계통으로 취직하고싶다고 했죠.

3월초에 학원들어가니 재수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우선은 외삼촌 집에 얹혀서 살면서

통학하게 되었고 반 친구들이 대부분 20~22살 한참 동생들... 남자는 저희반에서 제가

나이가 제일 많았고 26살 누나가 한 분 계셨습니다. 24살되는 남자 동생이 2명 있었구요.

군대도 갔다왔고 입대전 촐삭거리는 성격죽이고 예비역답게 동생들을 잘 이끌면서

공부하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뭐 학원에서 주는 생활기록표 잘 적으려고 노력은 많이 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3월 첫 모의고사 언4 수3 외3 사탐은 처음이니까 거의 6~7등급 수준;;;

기초개념을 집중적으로 했고... 선생님들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라서 제가 잘 배우고 흡수만 하면^ㅡ^

4월 5월동안 변화된 성적이라곤 사탐이 전부입니다. 언수외는 계속 3등급대...

사탐이 6~7등급에서 2등급 정도까지 올랐죠. 근데 웃긴게 생전처음 사탐을 하는 제가

5월이면 사탐 진도도 덜 나갔을 때인데 배경지식 찍기로 경제지리인가? 한지를 1등급도 받아보고

언수외의 우울함은 생각도 안하고 사탐을 단기간에 이렇게 올린 제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진도도 덜 나갔는데...1등급??? 이게 말이 안되는것이고...

지금 생각하면 웃긴일이죠...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제게 수능 최상위권분들이 넘치는

오르비에서 이런 말을 하면 웃음거리 밖에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부해서 성적이 나오면 올커니 하는 때가 있거든요. 제가 고2때 반에서 1등을 3번해서

수시로 좋은대학갈 꿈을 꾸었던것 때도 이런 느낌이었습니다.(방심은 곧 고3때 내신폭락으로 이어졌습니다.

미래에 더 발전한다고 쳐도 현실파악이 먼저니까요. 전 수시1차를 쓰지않고 고3때 더 성적을 올려서

수시2차로 가려고 자만떨다가 고3때 내신부실로 결국 수시도 정시도 실패한 케이스;;;)

5월에 사탐 오르니까 근거없는 자신감 345월 개념공부했고 지금까지 수능 1~2번 쳐본것도 아니고 그런생각으로

언수외도 6월엔 2등급 이상 나와줄거란 혼자만의 환타지에 빠져서 그냥 자만의 끝을 달렸던것 같습니다.

6월 모의고사 등급도 원점수도모르지만 1년동안의 최악의 점수를 이 때 받습니다. 현재 다니던 대학에 갈 딱 그수준의

성적...(고통스러웠습니다. 솔직히 아직 시간이 반년이나 남았다고 미칠듯한 낙천적인 성격으로 합리화 하더군요.)

제 성격 참 제가 생각해도 4차원입니다. 지나치게 낙천적이다. 현실파악을 안하고 다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해버리는;;;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다. 제 자신과의 약속은 못 지키면서 남들과의 약속은 잘 지킬리 만무합니다.

귀가 얇다. 사실 10개월정도 공부하면서 저를 제일 괴롭혔던 것이 이 부분입니다.

학원에서 마지막으로 만든반이라서 성적이 최상급에서 바닥애들까지 고루 있었던 반에서

40명중 언수외는 3~5월 5~10등 정도였는데 절반의 과정을 넘기는 지금 제 언수외는 변함없어도 저보다 성적이 낮던

동생들은 저를 넘어서 성적이 조금씩 올라가는겁니다. 결국 중하위권으로 떨어졌죠.

반 1~2등은 언수외탐 운 좋으면 올1등급 뜨는 애들... 그런 동생들보면 생활태도는 어떻고 공부 계획 학습량

모든게 궁금해서 알고싶고 배우고싶고 자격지심인지 뭔지 몰라도 열등감에 힘들었습니다.

왜 나만 안 오를까? 공부 좀 한다는 동생들 생활태도도 보고 학습계획도 묻고 싶었지만 뭐 한 두명이 아닌 이상

뒤죽박죽 머릿속에서 저를 괴롭히더군요. 그냥...

제 학원 생활은 재수처럼 동생들과 크게 어울리려고 하지않고 애들이 주말에 만나서 자습도 땡땡이 치고

스사 찍어서 가고 외식갈 때 전 걍 친한 동생 몇 만들어서 밥친구 정도하고 형이니까 밤 10시 학원끝나면

동생들 떡복이나 햄버거 등 간식도 사주고 그 정도로만 지냈습니다. 그래도 반 친구들 모두 저 늙은이 취급

안하고 먼저 말도 걸어주고 그러더군요.

사실 외로움도 힘들거라서 일부러 고시원,원룸 안 살고 외삼촌 집에 얹혀 산거거든요.

근데 문제는 외삼촌 집에 티비와 제 노트북... 인강은 듣지도 않고 다만 필요한 수험생 정보나

EBS때문에 가지고 온 노트북인데 그것으로 집에오면 딴 짓을 했습니다. 티비보는것도

주말저녁 스트레스 풀기용에서 어느샌가 집에오면 1시간씩 티비를 시청하고 자고...

아침에 반 1등 하는 여자애는 고시원 살면서 6시~7시 사이에 와서 자습할 때 전 항상

지각시간직전인 7시 50분... 지각할 때도 있었고 초심을 잃고 지각 횟수가 늘어나니

담임선생님이 저를 부르셔서 크게 한 말씀 하시더라구요. 예비역이 왜 그러냐...

저는 창피해서 죽을것 같았습니다. 그 때 이후로도 완벽하게 못 고치고 가끔 지각을 해서

제 자신을 너무도 관대하게 둔게 아닐까 싶어요. 의지력이 지나치게 약하죠.

6월까지 그렇게 생활을 하고 남은 9월까지 100일도 안되는 시간동안

학원 특강도 듣고 진짜 남들 뒤쳐지는 여름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주말에 자습 땡떙이 치는 애들이 조금씩 나와도 전 공부가 되든 안되든

토일 주말자습은 꼭 갔습니다. 공부하는 분위기에서 꾸준히 해보려고;;;

9월부터 수능까지는 기간이 70일 남짓이라서 전 9월엔 어느정도 성과를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자신은 없었죠. 그 사이에 사설 모의고사 성적은

기억도 안나지만 역시 3등급대정도로 머물더라구요;;; 9월 3일

학원자체에서 보는 9월 모평전날 외삼촌은 지방출장, 재수생인 사촌여동생과 외숙모는

시험보러 모교가 있는 대전으로... 집에는 저와 외삼촌 집 개(영웅이)만

있었죠. 공부를 했지만 모든것을 다 잊고 공부에 미친적이 얼마인가

남 공부법이나 궁금해하고 온갖 잡생각에 항상 불안하기만 하던 저였기에

9월 이날도 많이 떨렸습니다. 기출분석이라고 해본적 없는 제가

이번 수험을 치르면서 처음 한게 기출분석인데 6월 언어를 분석하고

수리도 분석하고 외국어도 분석하고 뭐 탐구는 진도 다 끝내고 복습하고

수리나형 개념도 10-가나 수1 특강으로 취약파트 다 보충했습니다.

다른것 안보고 새벽 1시 잠들기 전까지 수리 프린트로 개념만 쳐다보고

풀어놓은 문제풀이 과정 좀 쳐다보다가 영웅이랑 같이 잠들었습니다.

외숙모가 영웅이 혼자 재우면 여기저기 오줌 똥 싸놓는다고 데리고 자라기에;;;

혼자서 개까지 돌보고 아침에 사료도 물도 주고 학원을 가야하는 의무도 생겼습니다.

수능만큼은 아니지만 어떻게보면 수능과 가장 유사한 9월시험이었기에

아침도 먹어야 하고 일찍 일어나야했지만... 평균 기상시간이 6시30분인제가

혼자 잘 일어날 수 있을까? 혹시 또 지각하는거 아닌가 불안했습니다.

9월 3일 아침에 서울엔 지하철이 강풍으로 인해 지연되고 멈추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바람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니 오전 6시 20분쯤... 바람이 절 깨웠죠.

좋다고 여유있게 씻고 영웅이 밥주고 물주고 옷입고나니 밥먹으면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에 아침을 안먹고 노량진에 가서 맥도날드 맥모닝을 사먹었습니다.

학원에 가니 정전에 불이 다꺼져서 학원자체로 시험시간이 지연되었습니다.

언어를 10시쯤에 쳤습니다. 지금껏 한번도 3등급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는 저는

언어에서 과도하게 욕심을 부렸나봅니다. 그렇게 연습하고 신경쓰려고 노력했고

기출분석도 했지만... 마킹도 다 못하고 막판에 1~2지문 놓치고 마킹을 하다가

선생님께 답안지를 빼앗겼습니다. 담임선생님이셨는데... 수능장 가서도 그럴거냐고;;;

점심먹고 수리를 치는데 시간이 10~15분 남더군요.

객관식 ㄱㄴㄷ과 4점짜리 문제 3문제정도 못 풀고 주관식 30번

행렬 그 쉬운문제를 실수로 못풀고 다 찍고 냈습니다.

외국어도 치고 탐구도... 솔직히 제 실력자체가 언수외를 시간내에 다 풀지도못하는 상황이었고...
(시간넉넉히 풀면 언수외도 1등급 성적이 나오지만 당연히 수능은 시간이 정해진 시험이므로 핑계밖에 안되네요)

외국어 듣기 1번 4번을 헛생각하다가 놓쳤습니다.

언어시간의 충격으로 독한 맘먹고 쳤더니 수리는 다 풀어도

외국어는 또 시간이 부족하더군요. 독해문제 4~5문제 찍었습니다.

시험치고나서 우울하게 채점을 하는데...

언어는 마킹도중 빼았겨서 못 매겼습니다.

수리 88점(찍은거 한문제 맞았더군요.)

외국어 82점(듣기는 1번 4번만 틀리고 문법 a,b 맞추고 c에서 틀려서 하나 독해에서 찍은거 다 틀렸습니다.

30번부터 50번까지는 다 맞았는데... 억울하게 틀린 듣기 4점과 풀어보지도 못하고 낸 독해 12점;;;

탐구 한지 47점 세지42점 경지44점...

일단 반 전체에서 수리중에서 주관식 23인가? 24번인가 주사위문제를 저 혼자 맞추었더군요.

수학 1등이었구요.

확률파트가 약했는데... 나름 뿌듯하고 최고의 점수를 받아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순간 든 생각은 맘고생하면서 공부했더니 드디어 모의고사지만 올랐구나 싶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날 저녁 집으로 걸어오면서 어머니께 전화해서 한 말이 참;;;

언어 망쳐도 수외탐 다 올라서 제일 잘 본거 같다고 하니까

더 열심히 자만말고 노력하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때 그 말을 새겨 들었어야 했는데...

9월 성적표가 나오고
언 6등급(30%대)
수 2등급(95%대)
외 3등급(88%대)
3지리
한지 1등급(99%)
세지 3등급
경지 2등급(92%)

언어때문에 전혀 나아보일것 없는 성적이었지만...
수외탐에서 길이 보인게 너무 좋아서 또 낙천적으로 이제 언어만 올리면 된다
이딴 생각을 하더라구요.
제 자신에게 너무관대한거 같아요 지금보면...
이 때 든 생각이 언어 올린다는 생각보다 먼저 드는게...
혹 언어망쳐도 수능때 수외탐만 올리면 교차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과 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솔직히 이 말하는 지금 너무 쪽팔립니다.

사실 수학도 한문제 찍어서 맞춰놓고 제 실제 점수는 84점인데 전 합리화를 합니다.
찍는것도 실력이야. 근데 주관식 30번은 개인적으로 너무 억울하고 안타깝다.
저것만 맞췄으면 92점인데... 1등급인데...

외국어도 어려운 문제도 아니고 듣기 1,4번과 문법에서 어이없는 실수
또 다시 시간관리 실패했다는 생각과 함께 시간관리에 듣기 실수만 안하면
2등급을 넘어서 1등급도 받을수 있다... 이딴 생각을 해버린거죠.

탐구도 자신만만했습니다. 어차피 대부분 대학 2개보니까 수능때 1등급 2개만 나오면
되겠구나~ 경제지리 계산문제를 시간부족으로 못 풀었던 것에
한지 경지는 1등급 쉬워보였거든요. 이때부터 한지 경지 중심으로 공부하고
세지는 약간 소홀히 개념만 약간씩 맛뵈기로 봐주고 안했습니다.
국사는 애시당초 5~6월에 손 놔버렸습니다.

마지막 특강으로 언어를 신청하면서 기출분석과 함께 언어에 많은 비중을 두었습니다.

9월이후 학습계획표도 띄엄띄엄 제대로 안쓰고... 그냥 막 공부했던 것같아요.

9월을 시작으로 공부에 탄력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그냥 계획성없이 되는대로 막 했었죠.

마지막에 집중적으로 불태워야 할 때 방심을 한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막판에 언어 기출분석...시간맞추는데 집중해서 반복하니까 대충 2등급대 성적이

나오더군요... 제가 9월에 내놓은 수시가 성대와 한양대 상경계열

우선선발 언수외 등급합이 4등급인데

수리도 자신있었고

외국어도 자신있었고

언어는 1등급은 몰라도 최소 2등급에 맞추자

수리 외국어 1등급 받자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진짜 지금생각하면 한심할 정도로 자만을 했습니다.

난생처음 받아 본 적이 없는 성적을 수능당일날 받겠다니

말 다했죠. 선생님들께서도 학생들에게 한 말씀들이

수능 당일날 최고 성적이 나오도록 해야한다.

말은 쉽지 결과적으로 저희반에서 날고 기던 애들 대부분이

수능에선 평소보다 안 나오더라구요.

저를 포함해서 ...

방심의 끝을 달린 학생의 최후입니다.

그렇게 올인하던 언어 페이스 관리 잘 하다가 결국 1~2지문 찍어버리고

수리1등급 목표가 현실에선 3등급으로 바뀌고

시험치고나니까 실상난이도는 9월보다 더 쉬웠습니다.

제 취약파트인 확률,경우의수 다 맞추고 주관식도 쉬웠는데...

그 쉬운문제가 평소와 다르게 푸는 도중에 꼬이고

한끗차로 놓친 문제가 진짜 대부분이었습니다.

언어에 올인한게 문제였습니다. 수리문제풀이감이 떨어졌는지

개념은 있는데... 문제가 풀다가 답이 딱 떨어지는게 없습니다.ㅠㅠ

자만이 결국 감을 잃게 만들고 수능시험장에서 결과가 비참하게 나타났죠.

외국어 듣기 다 맞췄습니다. 문법도 다 맞췄습니다.

9월에 실수를 다 만회하듯이... ebs눈에 띄는 문제 많았습니다.

시간이 넉넉할 수 있었죠.

빈칸 독해가 어려웠는데 헛된 욕심에 만점을 생각하더군요.

근데 페이스가 어디서 말린지 몰라도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심장소리가 쿵쾅쿵쾅 계속 귀에 들리고 결국 전 귀마개를 빼고 집중하려 했죠.

근데 또 주변에서 바스락 소리가;;; 결국 그거 조절하랴 문제푸랴...

40번대 점수 주는 문제들 4문제나 찍고 시간 많이 투자한 빈칸도 틀리고 3등급 받았습니다.

탐구도 막판에 소홀히 했더니 2등급대로 떨어지더군요.

자만과 자심감을 구분못한 한 청년의 최후입니다.

학원 처음과 별 다를거 없는 성적으로 언수외탐 평균 3등급대 성적으로

대학을 내놓았지만... 대기번호받고

전 지금 내년 1년 더하겠다고 두번다신 똑같은 상황 되풀이 안하겠다고

다짐에 또 다짐을 합니다.

진짜 더는 이 짓 못하겠다 싶었습니다.

부모님은 더이상 실망할 힘도 없으신 거 같습니다.

어젯 밤 티비보는데 7세 인생인가??? 어린 아기들이 나와서 제가 "아버지 전

유치원 때 기억이 안나네요. 어땠어요 초등학교 때는??? 성적은???

초등학교 때는 공부 좀 했던것 같은데...ㅎ

아버지가 한 말씀 하시더라구요 평소와 똑같은 말투로...

네가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냐고... 넌 공부 못한다고

단 한번도 잘 한적 없었다고... 공부 잘하는 애들은 어떻고...

공부못하는 애들은 어떻고 어떻고... 아버지의 말하는 방법에 항상 불만을 품었는데...

할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가 자식에게 해줄수 있는 말이나 자라오신 환경이나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지극히 정상이십니다. 제가 문제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 자식인 제게도 최선의 말은 그저 뉘우치고 깨달을 때 까지

독한 소리해주신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집 자식과 비교도 당연한거구요.

수능 이후 몇 번이나 제 문제점과 학습방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실패요인을 생각했지만... 어젯밤에 그 소리를 듣고나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 부모님께 만큼은 인정받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문제점을 하나하나 생각해서 2시간동안 A4용지에 적어내려왔지만...

그래도 부족한 느낌입니다. 더 생각해서 이 모든것을 고치지 않으면

제겐 기회가 없을 듯 합니다.

전 다시 도전할 겁니다. 부모님때문도 아니고 주변 친척, 친구, 지인들 때문도 아닙니다.

아직 젊지만... 솔직히 세상과 저사이에 시간적 괴리감이 엄청납니다.

친구들은 대학 졸업하거나 어학연수 갔다와서 3~4학년

여자애들은 취업하거나 결혼을 하는데...

하지만 제 젊은 20대 이렇게 포기하면 죽기 직전까지 못 잊고

한번씩 생각 날 때마다 후회가 밀려들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을 위해서 2012년도 입시에서 꼭 목표대학 합격해야겠어요.

글이 너무 길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심한 청년의 후회스러운 과거를 그저

하소연한다고 들을 수도 있는데 전 소심합니다. 남들이 전형적인 A형이라면서 ㅎ 그래서

욕먹는게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으시고 독한 소리라도 제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시면 서슴없이 해주십시요.(다만 그 "나이쳐먹고 미련떤다" 이런 나이에 관한 인신공격은 너무 아픕니다.)

저도 압니다. 나이 많은거... 많이 부족하다는거...

빨라봐야 어학연수갔다오고 이것저것하면 30살 졸업에 하반기에 원하는 기업 입사원서나

내 볼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도 그 걱정은 대학합격하고 다니면서 해야겠어요.

제가 젊은 시간 허비하고 이제와서 꿈을 포기한다면 전 세상 그 누구보다 불행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저보다 훨씬 더 불행할 것 같습니다.

모두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공부합니다. 후회 하나없이 최고의 한 해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틀전에 서울대 구경을 갔다왔습니다. 관악산에 기운을 받아왔습니다.

국사공부도 시작합니다.

전국 수석 목표로 고승덕 변호사처럼 티비, 노래, 컴퓨터 다 끊고 공부하겠습니다.

목표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계열 2012학번...

터무니없는 목표라고 말하겠습니다. 정말 터무니없죠.

어디서 들은건 있어서 서울대 갈 정도로 열심히 하면 빗맞아도 연고대다?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극복하고 제가 능력을 펼칠 좋은 회사에 입사원서, 자개소개서라도 내보려면

SKY란 학교 이름이 필요하단 제 짧은 생각입니다.

원래 원서낼 수 있을 정도보다 2개단 위를 바라보라는 '리웰'님의 말대로라면

전 중앙대나 경희대 경영을 바라봐야겠죠. 그래도 전 만족하겠습니다^ㅡ^

올해 제가 죽을정도로 노력해도 진짜 운이 나쁘게 수능에서 또 미끌 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후회안하겠습니다. 진짜 노력했으니까...

진짜 자만도 없고 착각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티비도 없고 열등감 버리고

공부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정석대로라면 서울대 가겠죠?^ㅡ^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도록 엘리트의식에 쩔어서 온갖 비리에 쩌는 인간이 되지 않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 어떻게 하면 더 잘 살게 할 수 있을까...

복지쪽으로 좋게 해줄까... 경제전문가가 되어 경제적으로 한국을 더 높여볼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네요.

내년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오르비에 합격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제 전부를 걸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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